지노 바탈리 – 80만km의 영웅

최근 뚜르 드 프랑스와 연관된 이야기들을 찾다 보니 지노 바탈리라는 이탈리아 사이클 선수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알게 되었습니다. 바탈리는 MBC의 ‘서프라이즈’에서 [80만km의 영웅]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소개된 바 있는 선수입니다. 레이스에서도 뛰어났지만 인간으로서도 존경받는 선수 이상의 선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뚜르 드 프랑스에 관심을 높아진 것은 얼마전 [뚜르: 내생애 최고의 49일]이란 영화를 보고 나서였습니다. 얼마전 [뚜르: 내생애 최고의 49일]이란 영화를 보고 영화감상평을 카드로 올리기도 했었지요.

● [영화감상후기] 뚜르: 내 생애 최고의 49일
http://5happy.net/archives/1466

지노 바탈리 (Gino Bartali, 1914~2000)는 파우스토 코피와 함께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사이클 선수입니다.   지노 바탈리는 신체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아주 강인하여 ‘토스카의 철인’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하루도 쉬지 않고 자전거를 탔다고 합니다.   그는 신앙심이 깊은 사람이어서  투르 드 프랑스 기간에도 무슨 일이 있더라도 꼭 미사에 참석했고 이때문에 ‘독실한 지노’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습니다. 지노 바탈리의 강함은 꾸준함과 성실성에서 나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2차세계대전 중에 이탈리아의 유대인 800여명을 구해낸 것이 후세에 알려지면서 지노 바탈리는 ‘이탈리아의 쉰들러’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해졌습니다.  바탈리는 죽을 때까지 자신이 유대인을 도운 일에 대해서 거의 말하지 않았는데 심지어 아내에게까지 이야기하지 았다고 합니다.  다음과 같은 짧은 말을 아내에게 하면서 자신의 일을 암시했다고 하네요

“좋은 것이란 어떤 일을 하는 것이지, 그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옷 위에 다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다는 메달도 있다”
– 지노 바탈리

■ 이탈리아의 희망, 바탈리

바탈리는 10대 청소년 시절부터 그의 고향에서 열리는 사이클 경기를 휩쓸었습니다.  그는 이따금 1등을 경쟁선수에게 넘겨주고 우승상금을 대신 받아와 부모님께 갖다 드렸다고 합니다.  그까짓 우승의 명예는 시시해서 였을까요?

바탈리는 20세에 프로 선수가 되었고 이탈리아에서 가장 중요한 대회인 지로 디탈리아와 지로 디 롬바르디아에서 우승했습니다.

1938년 바탈리는 뚜르 드 프랑스에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전해지는 바로는 바탈리는 무솔리니로부터 이탈리아의 자존심을 위해 투르 드 프랑스에서 우승하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는 알프스 산악구간에서 독주를 펼치며 구간우승을 차지했고 엘로 저지를 입은 뒤로 파리에 이를 때까지 이를 지켜서 종합우승과 산악왕을 차지했습니다. 국제 사이클 계에서 이탈리아의 지위가 높아졌고 바탈리는 이탈리아의 영웅이 되었지요

■ 800명의 목숨을 구한 80만 km의 질주

지노 바탈리가 2차 세계대전 중에 유대인 800명의 목숨을 구했지만 이일을 비밀로 했고, 이 사실은 그의 사후에야 밝혀졌습니다.  2012년 이스라엘에 있는 홀로코스트 기념재단에서는 그를 이탈리아의 쉰들러라 칭하며 그의 이름을 기념비에 새기고 특별명예상을 수여한 바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중 이탈리아가 연합군에게 항복하자 독일은 이탈리아를 점령했고 이탈리아의 유대인을 탄압하기 시작했습니다. 가난한 사이클 선수였던 시절,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던 유대인 스타인버그가 독일군에게 끌려가게 되었고, 이때부터 지노 바탈리는 유대인들이 다른 나라로 피신 할 수 있게 돕기위해 그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그는 안젤로 추기경에게 도움을 요청해서 위조 여권을 만들어 유대인들을 중립국으로 탈출시킬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는 자전거의 차체와 안장속에 위조 여권과 위조여권을 만드는데 필요한 서류과 사진을 숨긴 채 대회 연습을 핑계로 독일군의 눈을 피해 유대인들에게 전달했습니다. 결국 이탈리아에 거주했던 800여명의 유대인들은 무사히 중립국으로 탈출할 수 있었다고합니다. 그가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유대인들을 구하기 위해 자전거로 달린 거리는 무려 80만 km에 달했다고 합니다. MBC ‘서프라이즈’에서 지노 바탈리의 업적을 소개한 ’80만km의 영웅’편을 방영하기도 했습니다.

■ 이탈리아를 구한 바탈리

1948년 바탈리는 다시 투르 드 프랑스에 출전했습니다. 1938년 우승이후 10년만이었다. 그는 서른네 살이었지만 선수로서는 너무 늙은 나이였죠 . 먼저 공격을 시도해서 첫 번째 구간에서 이기긴 했지만 그다음 날부터 흔들리기 시작했고 1주차 구간이 마쳐졌을 때 종합성적에서 1위에 비해 20분이나 뒤지게 되었습니다.

알프스 구간이 시작되기 앞서 바탈리는 이탈리아 총리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당시 공산당 지도자 팔미로 톨리아티가 총격을 받아 중상을 입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이탈리아에서 폭동과 혼란이 확산되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상황이 안 좋아요. 지노, 우리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내가 뭘 할 수 있죠? 나는 투르에 있고 이탈리아로 돌아갈 수도 없는데.”
“바로 그겁니다. 당신은 투르 드 프랑스에서 이기면 돼요. 당신이 이기면 사태가 진정될 겁니다.”
“저는 마술사가 아닙니다. 투르는 파리에서 끝나고 아직 경기는 1주일 이상이 남았어요.”
“지노, 이건 중요한 일이오. 이탈리아와 이탈리아 사람 모두를 위해서 아주 중요한 일이란 말이오.”

바탈리는 상황을 이해했고 이때부터 무서운 뒤심을 발휘하게 됩니다. 그는 알프스 구간에서 역사적인 세 개 구간 연속 우승을 차지했고 1위에 뒤쳐졌던 시간도 모두 다시 되찾게 됩니다.  결국 그는 종합성적에서 투르 드 프랑스에서 종합 우승을 차지하게 되었는데 2위 선수보다 16분이나 앞선 기록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그의 승리 덕분에 이탈리아의 소요사태는 잠잠해졌다고 합니다. 피격되었던 톨리아티가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뒤 처음 한 말도 바로 바탈리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바탈리는 어떻게 됐어?”
– 팔미로 톨리아티

“눈보라와 비와 얼음을 뚫고 바탈리는 먼지를 뒤집어쓴 천사처럼 위풍당당하게 떠올랐다. 그의 옷은 비에 흠뻑 젖었지만 내면에는 챔피언의 고결한 영혼을 간직하고 있었다.”
– 자크 고데 투르 드 프랑스 조직위원장

■ 바탈리와 코피, 친구이자 경쟁자

1940년 지로 디탈리아에서 새로운 챔피언이 등장했는데 바로 바탈리가 발탁해서 같은 팀에서 활동하도록 한 사람이 파우스토 코피였다. 바탈리는 코피가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자유분방한 코피는 떠오르는 스타였고 바탈리보다 조금 우세했지만 바탈리는 이런 사실을 쉽게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경쟁이 심해지면서 나중에는 자신이 우승하는 것보다 서로를 이기는 것이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애증의 관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자전거위에서 코피는 신과 같다. 그는 출발할 때는 인간이지만 달리기 시작하면 신이다. 그의 유연한 자세는 정말 멋지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보고 열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 지노 바탈리

1949년에 바탈리와 코피는 같은 팀 동료로 함께 투르에 출전했는데 두 사람 다 우승을 노리고 있었습니다. 자존심 싸움으로 인해 팀 감독인 알프레도 빈다는 두 사람 사이에서 고생하고 있었지요.

알프스 구간에서 ‘늙은 지노’가 서른다섯 번째 생일을 맞았는데… 생일날 아침 코피는 바탈리에게 생일을 축하한다고 말하고 바탈리가 구간 우승을 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제안했습니다. 그날 코피는 약속을 지켰고 바탈리가 이길 수 있도록 같이 달렸습니다. 두 이탈리아 챔피언 사이에는 평화가 찾아왔지요. 그다음 구간에서는 코피가 구간우승을 차지했고 코피는 투르에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바탈리와 코피는 경쟁관계가 점차 희미해지고 친구가 되어 갔습니다.  아래 사진은 바탈리와 코피의 사진인데 뒤쪽이 바탈리, 앞쪽이 코피입니다.

바탈리는 죽음을 앞두고 있을 때 천국에서 그의 적수였던 코피를 만나면 무슨 말을 하겠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농담을 했다.

“나는 지옥이 더 좋아요. 거기에는 언덕이 더 많을 테니까요.”
– 지노 바탈리

바탈리는 투르 드 프랑스와 지로 디탈리아에서 모두 여덟 번 산악왕을 차지할 정도로 산악에서 뛰어난 선수였습니다. 바탈리는 담배를 피우고 술도 마셨지만 85세까지 비교적 장수했고 2000년 피렌체에 있는 그의 집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피렌체는 이탈리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도시중의 하나입니다. 끝으로 르네상스 문화가 꽃피웠던 아름다운 피렌체의 모습을 아래에 담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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